"촛불, 새로운 단일 진보정당 원해"
2010/08/24 13:17 2010/08/24 13:17

당 발전 전략에 대한 의견


김준성(지방선거 평가와 당 발전 전략 수립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


*이 의견서는 당발특위의 요청에 따라 지난 7월 6일 제출한 것입니다.


1. 진보신당의 새 노선: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


①진보신당의 낮은 인지도와 정당 지지율의 가장 큰 배경은 불분명한 정체성이다. 진보신당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 별로 없고 당원들도 제각각 조금씩 다르게 당의 정체성을 생각하고 있다. 진보신당의 발전 전략 수립은 정체성 확립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심상정 전 대표는 당의 정체성에 대해 ‘부정적 정체성’이라는 표현을 썼다. 진보신당이 자기만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안티 민노당’, ‘안티 노무현’을 존재 이유로 설명하고 있다는 것이다. 동의한다. 진보신당에 대해 국민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여전히 진보신당이 왜 민주노동당에서 갈라져 나왔는지 잘 모르고 진보신당이 민주노동당과 달리 무엇을 하겠다는 정치세력인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국민의 탓은 아니다. 모두 진보신당이 국민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더 나아가서는 진보신당 스스로가 정체성 확립에 실패했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한나라당이 대충 무슨 당인지 안다.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국민참여당은 민주당과 비슷한 사람들이지만 친노세력이 따로 만든 당이라고 알고 있다. 민주노동당은 노동자의 당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진보신당에 대한 이미지는 없다. 노회찬이나 심상정이라는 이름을 대야 겨우 알아듣기는 하지만 그래도 뭐하자는 당인지는 여전히 모른다.


②진보신당 발전의 첫 걸음은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한다. 정체성 확립을 위한 노선을 세우고, 진보신당의 정체성은 무엇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형성될 때까지 일관되게 실천해야 한다. 당의 정치활동 기획과 지역에서의 실천에 일관되게 그 노선이 반영되어야 한다.


노회찬 대표는 ‘서민중심복지동맹’이라는 구상을 제시했지만 어디까지나 화두였다. 진보신당이 그러한 방향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서민중심’이라는 생각에는 조금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그러한 방향으로 당 활동을 일관되게 밀고 나갔다면 국민들에게 ‘저 사람들이 뭘 하자는 사람들이구나’ 정도는 분명히 알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진보신당 내부의 문제도 불분명한 정체성 문제를 낳는 요인이다. 당원들이 생각하는 당의 정체성이 다 다른데, 어떤 당원은 진보신당은 ‘반자본주의 정당’이라고 하고 어떤 당원은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고 한다. 그리고 또 어떤 당원은 보다 분명한 사회주의 지향을 밝힐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모두 그렇게 생각할만한 이유가 있는 입장이다. 그래서 모두 존중되어야 하지만 이래서는 국민들이 보기에 알쏭달쏭하다. 진보신당의 자유주의 개혁정당의 정치실천과 다를 바 없는 각종 활동을 더 보태면 국민들은 더욱 더 아리송하다.


③무엇이 되었든 정체성을 분명히 확립하는 것이 지금 상태보다야 낫지만, 그렇다고 아무런 노선이나 다 되는 것은 아니다. 국민들이 이해하기 쉽고 시대의 과제를 가장 잘 반영한 노선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신당은 ‘복지당’이 되어야 한다.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의 기치를 들어야 한다. 


복지국가 건설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시대정신이며 국민들의 염원이다. 우리가 건설해야 하는 복지국가는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으로 가능하다. 이는 과거 민주노동당이 주장했던 무상의료, 무상교육 등과 같은 맥락이다. 보편적 복지시스템을 구축해서 모든 국민이 중병에 걸려 가정경제가 무너지면 어떻게 하나, 아이들 사교육비를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고민에서 벗어나게 해야 한다.


주거복지도, 노동자의 권리와 생존권도, 여성의 자아실현과 권리존중도, 고령화 사회에 대한 대비도 모두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은 박근혜도 복지국가를 주장하고 민주당도 복지를 말하는데 우리가 왜 그들과 같은 주장을 해야 하느냐고 주장하는데 이는 잘못된 주장이다. 그들이 말하는 복지와 우리 당의 노선이 같다면 그것은 응당 환영해야 할 일이고, 그들이 말하는 복지가 평등사회를 만드는 길로서의 보편적 복지가 아니라 자본주의 사회의 경쟁시스템에서 탈락한 저소득층을 달래는 수준의 차별적 복지, 시혜적 복지라면 응당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리의 주장을 하면 되는 것이다.


평등과 연대의 가치는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슬로건에 포섭되어 있다고 봤을 때 평화와 생태, 여성의 가치는 따로 강조할 필요가 있는데 그렇다고 하위 개념으로 삼자는 말은 아니다. 국민들이 가장 쉽게 받아들일 수 있고 이해하기 쉬운 복지국가 건설 문제를 대표 브랜드로 전면에 내세우되 평화, 생태, 여성의 가치 또한 충분히 우리 당 정체성의 한 면으로 내세워야 한다. 


④새로운 노선을 전면화하기 위해 오는 9.5 전당대회에서 복지국가 건설을 당의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겠다는 내용의 결의문을 채택하고 내년 정기전당대회에서 새로운 노선을 잘 드러낼 수 있도록 강령과 당헌 전문을 개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런 방향으로 당의 주된 활동이 이뤄져야 한다. 중앙당의 정치 기획도 지역 당협의 지역 활동도 새 노선에 맞게 조정되어야 한다.


2. 당의 진로: 복지국가를 공통분모로 하는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


①당의 진로를 고민할 때 가장 먼저 하는 생각은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가능성’이다.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이 가능하다면, 즉 다시 말해서 진보신당이 자기만의 힘으로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진보 정치를 할 수 있다면 연합정치를 고민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진보신당의 독자 생존가능성’은 매우 낮다.


진보신당이 두 번의 전국 선거에서 받은 지지율을 봐도 그렇고 특히, 터무니없이 허약한 물적 토대를 보면 더욱 그렇다. 정당은 끊임없이 인재를 모으고, 재정을 튼튼하게 하고 조직을 키워야 하는 존재인데 진보신당은 세 가지 모두 부족하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선거에 나갈 공직후보 출마자가 없고, 선거를 치를 돈도 없으며, 선거운동을 뛰어줄 지역 조직이 없다. 그러다보니 일부 후보들은 선거에 나갈 때 당선은 꿈도 꾸지 않는다. 이 문제가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해야 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다.


②2004년 총선 이후로 각종 전국 선거에서 한국의 유권자들은 일관되게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제외한 진보 색채의 정당에게 13%에서 17% 사이의 표를 주고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에서도 그랬다. 이 수치로 잡히는 유권자들은 어떤 정당 구도가 형성되더라도 다소 편차는 있지만 보수정당을 찍지 않고 진보정당이나 자신들이 보기에 개혁적이라고 생각하는 정당에 표를 던진다. 이런 진보파 유권자들 그리고 2008년 촛불 광장에 나섰던 국민들이 주저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③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의 원칙은 가치와 노선, 정책의 연대여야 한다는 것이다. 알기 쉽게 이야기하기 위해서 구체적으로 당 이름을 거명하는 경우가 있지만, 사실 가치와 노선, 정책에 동의한다면 그 누구라도 새로운 출발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이 원칙이어야 한다. 노회찬 대표는 지난 해 이미 ‘민들레연대’ 구상을 통해서 이런 원칙을 밝힌 바 있다.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의 가치는 무엇이어야 하는가. 바로 보편적 복지시스템 구축을 통한 복지국가 건설이다.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이 만들어야 할 나라의 미래상을 복지국가로 상정하고 한국 사회에 맞는 실행계획을 수립해 변함없이 밀고 나가자는 합의가 진보연합정당의 건설의 전제다.


④진보신당이 작은 당이면서도 더 큰 정치세력들에게 주눅 들지 않으면서 연합정당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은 가치를 선점하는 것이다. 시대정신을 정확하게 읽고 한국 사회가 나아갈 길을 제대로 제시하면서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의 주도 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진보신당은 9.5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을 건설하겠다고 선언하고 당내에 추진 기구를 설치해야 한다. 그리고 차기 당 대표단을 중심으로 너무 급하지도 않고 너무 느리지도 않게 새로운 진보연합정당 건설을 추진해야 한다.


3. 2012년 전략: 의미 있는 의석 수 확보와 민주진보연립정부 수립


①2012년에는 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겨울에 대통령 선거가 있다. 앞서 제기한 문제들이 잘 풀렸을 때 우리의 목표는 국회에서의 의미 있는 의석 수 확보와 민주진보연립정부 수립이라고 생각한다.


②의미 있는 의석 수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의석 수를 말한다. 현재로서는 20석이다. 국회 교섭단체가 되어야 국회 운영과 각종 입법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물론 2당이 되면 좋고 1당이 되면 더 좋지만 현재로선 교섭단체 구성만 해도 쉬운 과제가 아니기 때문에 2012년 봄 국회의원 선거에서 20석 이상 당선을 목표로 하는 것이 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은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당과 선거연합을 해야 한다. 모든 선거구에서 한나라당과 야권이 1대1 구도로 대결하는 구도를 만들자는 것이다. 이 전략은 이미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경기도 고양에서 훌륭하게 실험된 바 있는데, 놀랍게도 진보신당의 최재연 후보를 비롯해서 야권연대 후보가 모든 지역에서 승리를 거뒀다.


민주당을 선거연합의 장으로 나오게 하기 위해서는 되도록 많은 선거구에서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의 후보들이 높은 여론조사 지지율을 얻어야 한다. 그래야만 민주당이 현실적인 위협을 느낄 것이다.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5+4 협상테이블에 나온 것은 노회찬과 심상정이라는 후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10% 안팎의 지지율을 보이고 있던 두 후보를 그대로 두고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이기기 힘들다는 판단을 했기 때문에 기초단체장이나 광역의원 몇 자리를 양보하려 했던 것이다.


③새로운 대표단이 구성되면 진보신당은 2012년에 반드시 국회에 들어가야 할 후보군을 선정하고 집중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가동해야 한다. 이 일은 진보연합정당의 건설 여부와 상관없이 추진해야 한다.


한정된 자원과 지역 여건을 생각했을 때 진보신당의 정예라 할 만한 후보는 많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부터 좋은 후보를 발굴하고 좋은 후보가 있는 지역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 전략지역의 선정은 신중해야겠지만 일단 선정된 이후에는 아낌없이 지원해야 한다. 당선 가능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 다수 출마 전략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 


④2012년 대선에 새로운 진보연합정당은 자체 후보를 내야 한다. 우리 후보는 당선을 목적으로 선거전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민주진보연립정부 구성을 목표로 민주당 후보와 선거연합을 이뤄야 한다. 실현된 야권연대의 대통령 후보는 우리 후보가 될 수도 있고 민주당 후보가 될 수도 있다. 다만 정치협상을 통해서든 경쟁방식을 통해서든 단일후보를 내세우고 야권연대가 승리한다면 연립정부를 구성해야 한다.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공동 국정운영 체제를 만드는 것과 함께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독일식 비례대표제 도입 등 선거제도 개혁이다. 다른 모든 것이 다 합의된다고 하더라도 선거제도 개혁을 약속받지 못한다면 선거연합은 있을 수 없다. 연정을 통한 국정참여도 매우 큰 의미가 있는 일이지만 그보다 더 큰 일은 진보정당이 안정적으로 국정에 참여할 수 있는 선거제도, 국민의 의사가 올바르게 반영될 수 있는 선거제도를 만드는 일이다.


지난 영국 총선에서 유력한 3당으로 부상한 자유당이 최근 보수당과 선거제도 개혁을 매개로 연정을 하고 있는 것이 좋은 예다. 선거제도만 바꾸면 많은 것이 달라질 것이다.

2010/07/23 21:30 2010/07/23 21:30

1. 노회찬의 완주와 심상정의 중도 사퇴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은 패배했다. 국민들로부터 3.13%의 지지를 받았다. 전국에서 3명의 광역의원과 22명의 기초의원이 당선되었지만 광역비례의원은 한 명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기대를 모았던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3.26%의 득표율에 머물렀고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중도 사퇴했다.

 

불행하게도 진보신당 당선자들 중에 당이 잘해서 당선된 사람은 거의 없다. 부산 해운대와 경기도 고양처럼 야5당 연대를 실현한 지역 또는 지난 4년간 꾸준히 지역을 갈고 닦은 지역의 일꾼들만이 당선됐다. 당은 국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다.

 

혹자는 25명의 당선자의 존재를 들어 선거 패배를 애써 외면하려고 하지만 진보신당은 프랑스식 결선투표제라면 대통령 후보를 단 한 번도 결선투표에 내보내지 못하고 독일식 비례대표제라면 연방의회에 단 한 명의 국회의원도 보낼 수 없는 그런 불임 정당이다. 지난 2008년 총선과 이번 지방선거라는 두 번의 전국 선거에서의 연이은 패배를 우리는 겸허히 인정해야 한다.

 

이러한 패배는 이미 선거 과정에서 예견된 것이었다. 지난 3월 16일 5+4 회담에서 이탈하면서 노회찬과 심상정의 지지율은 급격히 하락하기 시작했고 빠지는 지지율과 비례해서 진보신당은 언론에서 사라져갔다. 선거연합에 대한 혼선 속에서 부산에서는 야5당 연대에 합의해 김석준 후보가 민주당 후보와 단일화를 했고 이를 비판하며 이용길 충남도지사 후보는 후보 자리를 내던졌다. 그리고 당 지도부는 이런 혼선을 막지 못했다.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완주해서 3.26%의 득표율을 얻었고 심상정 경기도지사 후보는 중도 사퇴했다. 두 후보의 선택은 각기 이유 있는 정치행위로서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패배가 분명히 예견되는데도 노회찬 후보는 당의 대표였기 때문에 독자성을 훼손하지 않기 위해 완주를 선택했고 심상정 후보는 민심으로부터의 고립을 피하고 후일 진보진영 재편 과정에 공세적으로 대응하고자 사퇴를 선택했다. 완주만이 선이고 사퇴는 악이라는 논리나 그 반대의 논리 모두 잘못된 것이다.

 

2. 애매모호한 노선과 우유부단한 지도력, 취약한 물적 기반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진보신당이 패한 결정적인 원인은 애매모호한 노선과 우유부단한 지도력, 현저하게 취약한 물적 기반 때문이다.

 

노선의 애매모호함은 진보신당의 가장 큰 문제점이다. 진보신당은 강령에서 ‘자본주의의 극복’과 ‘주요 생산수단의 국유화’를 주장하는 급진적인 좌파 정당이지만 언론이나 시민사회, 국민들은 그것을 모른다. 그리고 더 결정적인 문제는 그런 테제만을 내세울 뿐이지 구체적인 현실에서 어떻게 국민의 삶을 바꾸고 어떤 나라로 한국 사회를 개조할 것인지 프로그램을 명확히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도대체 진보신당은 뭐하려는 당인지 모르겠다는 지적을 받아온 것이다. 진보신당은 반자본주의 당인가 아니면 한국형 사민주의 당인가, 아니면 자유주의 개혁정당만도 못한 얼치기 진보정당인가.

 

노회찬 서울시장 후보는 이번 선거에서 복지혁명을 내세웠고, 심상정은 교육과 복지의 경기도를 내세웠다. 슬로건으로서는 다 적절한 것이었고 두 후보 모두 언론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그다지 강한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분명히 선거 공간에서 진보신당의 노선을 복지국가 노선으로 자리매김하는 좋은 시도였지만 국민들은 알아주지 않았다. 국민들은 왜 알아주지 않았을까? 진보신당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 낯설었기 때문이다.

 

평소에는 공부를 안하면서 시험기간에 반짝 열심히 공부한다고 좋은 성적이 나오지 않듯이 평소에는 뭐 하는 정당인지 모르게 행동하다가 선거 때 갑자기 복지국가 슬로건을 들고 나온다고 국민들이 그렇게 쉽게 인정해주는 것은 아니다.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의 공으로 이번 선거에서 무상급식 문제가 전면 대두되었다. 보편적 복지냐 차별적 복지냐의 문제가 선거의 쟁점이 된 것이다. 평소에 그리고 처음부터 보편적 복지를 추구하는 정치세력으로 진보신당이 국민들로부터 인정받고 있었다면 진보신당은 적어도 정책 면에서는 야권 전체를 대표할 수 있었을 것이다.

 

우유부단한 지도력의 문제 또한 선거 패배의 큰 원인이다. 우유부단한 지도력은 전략의 부재를 낳았고 당원들은 우왕좌왕했다. 이번 선거에서 가장 큰 이슈가 된 선거연합 문제에 대해서 당 지도부는 누가 봐도 책임을 방기했다. 위험부담을 감수하고 5+4 회담에 참여했지만 정치협상으로 광역단체장 자리를 양보 받으려 했던 전략이 잘 먹히지 않아 협상테이블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 후 나온 방침은 지역별로 알아서 하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지역별로 다른 선거연합이 추진되었고 진보신당은 지역별로 다 다른 당이 되어버렸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모든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선거연합에 대해서 말하자면, 진보신당은 자체 역량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5+4 회담에서 승부를 냈어야 했다. 노회찬이든 심상정이든 어차피 본선 무대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예선에서 먼저 다른 당 후보와 단일화를 해야 했고 그 방법은 경쟁 방식 밖에 없었다. 민주당이 어떻게 광역단체장 자리 하나를 진보신당에게 그냥 바치기를 바랄 수 있는가. 여론조사 경선이 됐든 국민경선이 됐든 경쟁 방식을 통해서 반MB 단일후보를 결정해야 한다는 건 상식적인 것이다. 그런데 당 지도부는 상식을 외면하고 좌충우돌하면서 패배를 자초했다.

 

만약 연대협상에 꾸준히 참여하면서 노회찬과 심상정이 서울과 경기에서 다른 당 후보와 멋진 단일화 드라마를 연출했다면 그리고 그 대가로 기초단체장과 지방의원 의석을 다소 확보할 수 있었다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었을 것이다. 그 좋은 예가 인천의 민주노동당이다. 수도권 최초의 기초단체장 2명을 김성진 시장 후보의 지지율 10%를 지렛대 삼아 얻어내지 않았는가. 우리도 그렇게 했다면 명분도 살리고 실리도 챙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당 지도부는 경직된 전략 때문에 의미 있는 전술을 구사하지 못했다.

 

현저하게 취약한 물적 기반도 패배의 원인으로 언급해야 한다. 진보신당은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175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굉장히 적은 수다. 혹자는 진보신당의 당세를 봤을 때 이 정도 만으로도 많이 출마했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진보신당의 물적 기반이라는 것은 정말 터무니없을 정도로 약한 것이다. 진보신당의 당세가 가장 강한 지역이라는 서울에서도 25개 기초단체장 중에서 진보신당 후보가 출마한 곳은 단 두 곳뿐이었다.

 

진보신당은 전국 선거를 치를만한 돈과 조직, 사람이 모두 너무 부족하다. 너무도 당연하지만 사람들이 많이 언급하지 않는 부분인데 솔직히 말해서 독자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나 한 것인지 자문해 봐야 한다. 선거 자금을 모을 수 없고, 선거에 내보낼만한 급이 되는 인물이 없고, 인물이 있다 하더라도 뒷받침 해 줄 조직이 없는 정당이 어떻게 독자 생존하기를 바랄 수 있을까. 더군다나 진보신당은 이제 혈기왕성한 운동권 젊은이들이 모든 걸 다 바쳐 가며 헌신하는 그런 당이 아니다.

 

3. 복지국가 노선 전면화와 연합정치의 길

 

이상의 선거 패배 원인을 곱씹으면서 민주주의복지사회연대는 두 가지를 주장하고자 한다. 바로 복지국가 노선의 전면화와 연합정치의 길이다.

 

국민들은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들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당이냐고. 그럴 때 우리는 지금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는가. 평등 평화 생태 연대의 가치를 실현하는 당이라고 말하고 있나?, 아니면 민주적인 생태 사회주의를 하고자 하는 당이라고 하고 있나?, 그것도 아니면 복지 혁명을 하고자 하는 당이라고 말하고 있나? 아마 당원들부터도 혼란스러울 것이다. 대체 진보신당의 정체는 무엇인가.

 

진보신당은 선거 패배를 딛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그리고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없이 급진적 슬로건만을 외치는 운동권 정당의 구태를 벗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시기 한국 사회에서 가장 국민에게 환영받을 수 있는 진보적 가치, 정책, 의제를 제시하고 구체적인 실천 프로그램을 내놓고, 국민과 만나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 그리고 선거에서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서 답은 복지국가 노선 전면화다.

 

복지국가 노선의 전면화로 진보신당은 합리적인 진보정치세력으로서의 위상을 세워야 한다. 그리고 현실 가능한 대안을 제시하는, 국민 다수의 의사에 기반해 정치활동을 하는 정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 그리고 또한 불철저한 민주당의 사회 개혁 의지에 맞서 진정으로 한국 사회를 보편적 복지 시스템으로 개조하고자 하는 여러 진보정치 세력과 개인, 시민사회를 대통합 진보정당 건설의 장으로 이끌어 내는 중심세력이 되어야 한다.

 

모두 복지국가 노선의 전면화로 가능한 일이다. 오해가 있을 수 있는데 그렇다고 해서 여러 진보적인 가치와 정책을 폐기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 가치와 정책의 실현을 정치적으로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라도 가장 대중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진보 노선인 보편적 복지국가의 기치를 들자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우리가 만들고자 하는 사회의 상을 명료하게 제시하자는 것이다.

 

지난 2008년 총선과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확인되었고 평소 여론조사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현재 진보신당을 지지하는 국민은 1%에서 3% 사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이것이 현실이다. 이런 지지율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리고 앞서 말했듯이 진보신당의 물적 토대는 너무도 취약하다. 돈과 사람, 조직이 모두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이래서는 독자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정치세력과 연합하지 않고서는 앞길을 열어 갈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2004년 이후 치러진 전국 선거에서 보면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지지하지 않고 민주노동당이나 창조한국당, 국민참여당을 지지하는 유권자가 대략 13%에서 15% 사이를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번 6.2 지방선거 결과도 그렇게 나왔다. 민주노동당, 국민참여당, 진보신당의 지지율 합계가 17%가 나온 것이다. 이 세 당과 현재 겨우 간판만 유지하고 있는 창조한국당이 연합할 수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 의미 있는 진보정당을 만들 수 있다.

 

이들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이념은 물론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 될 것이다. 연합의 전제가 되어야 하는 정책협약의 중심에는 보편적 복지국가 건설이라는 이념이 자리잡아야 한다.

 

물론 민주노동당이나 국민참여당과의 과거 문제, 이념 문제, 정책의 차이 문제 등을 들어 연합이 과연 가능한 것이냐고 반문할 수 있다. 물론 어려움은 있을 것이고 시간은 걸릴 것이다. 한미 FTA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등에서 이견이 존재한다. 이런 문제는 각기 자기 안을 먼저 비판적으로 성찰하고 성의 있는 대화에 나선다면 극복할 수 없는 문제가 아니다.

 

진보신당을 비롯해서 진보 야권의 주요 지도자들은 통합의 길로 가지 않는다면 모두 죽는 길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2012년 4월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12월에 대통령 선거가 있는데 이 두 번의 선거를 거치면서 한국의 진보 정치세력은 연합해서 생존하든가 아니면 역사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은 자신들의 의사를 정치적으로 대변할 수 있는 힘센 진보정당의 출현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이런 점을 진보 진영의 수많은 활동가들이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연합은 가능하다.

 

우여곡절 끝에 2012년 총선 전에 연합이 성사된다면, 그렇게 해서 탄생한 대통합 진보정당은 민주당과의 야권연대를 성사시켜서 전국 245개 국회의원 선거구에서 모든 야권 후보를 한나라당 후보와 1대 1 구도로 맞서게 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이번 6.2 지방선거에서 드러난 결과와 같이 진보정치세력은 차기 국회에서 교섭단체 구성도 가능하다. 이 길에 진보신당이 동참해야 한다. 향후 선거제도 개편이 어떻게 될지에 따라 구체적인 양상은 달라질 수 있겠지만 어쨌든 기본 방향은 연합정치다. 연합정치라는 실험을 통해 민주당을 넘어서는 한국 사회의 대표 진보정치세력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진보신당은 영원히 3% 정당으로 머물게 될 것이다.

2010/07/05 19:05 2010/07/05 19:05